처음 이 영화를 보러 갔을 때만 해도 그냥 가볍게 즐기는 추리물 정도로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상영 내내 눈을 떼지 못했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에도 자리에서 쉽사리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참을 '그 장면이 이런 의미였구나' 하며 복기하게 만드는 작품이었습니다. 추리물을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영화 보는 내내 이야기 속으로 자연스럽게 빨려 들어가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올해 본 영화 중 가장 영리하게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 개봉일: 2019년 | 장르: 미스터리, 스릴러 | 러닝타임: 130분 | 감독: 라이언 존슨
나이브스 아웃 반전 결말
영화가 끝나고 나면 많은 관객이 이런 반응을 보입니다. '이렇게 끝날 줄 몰랐다' 나이브스 아웃은 처음부터 관객을 철저히 교란합니다. 영화 초반부, 사건의 전말이 너무 이르게 공개되는 것처럼 느껴져서 오히려 당황하게 됩니다. 베스트셀러 미스터리 소설가 할런 트롬비가 85세 생일날 밤 숨진 채 발견되고 그 죽음의 목격자이자 핵심 증인인 간호사 마르타는 거짓말을 하면 구토가 나는 체질입니다. 이 설정 하나만으로도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튀어나갑니다. 관객은 누가 범인인지 이미 알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정작 영화가 준비한 두 번째, 세 번째 반전을 눈치채지 못합니다. 라이언 존슨 감독은 후더닛 장르의 공식을 정직하게 따르는 척하면서 그 공식 자체를 뒤집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설계했습니다. 결말에 이르면 누가 무엇을 어떻게 계획했는지 모든 퍼즐 조각이 맞아떨어지는데, 그 쾌감이 상당합니다. 단순히 '반전이 있었다'가 아니라 복선들을 돌아보며 '이미 다 보여줬구나'라는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결말 직전, 마르타가 할런의 저택 테라스에서 머그컵을 들고 내려다보는 장면은 이 영화가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가장 인상적으로 담아낸 순간입니다. 유산을 둘러싼 탐욕과 위선이 낱낱이 드러난 가족들을 내려보는 그 시선에는 통쾌함과 씁쓸함이 동시에 담겨 있습니다.
영화를 완성시킨 출연진
나이브스 아웃에는 유독 눈길을 끄는 배우들이 많습니다. 사립탐정 브누아 블랑 역의 다니엘 크레이그는 007 시리즈에서 보여준 냉정하고 절제된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과장된 남부 억양에 익살스러운 표정, 특유의 여유로운 태도까지 갖춘 이 탐정은 영화 전체를 이끄는 중심축입니다. 크레이그가 이 역할을 얼마나 즐기며 연기했는지가 화면을 통해 그대로 전달됩니다. 손자 랜섬 역을 맡은 크리스 에반스는 마블 영화에서 보아온 선한 영웅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던집니다. 거들먹거리고 이기적인 인물을 능청스럽게 소화하는데, 이 역할 선택 자체가 배우로서 크리스 에반스의 넓은 스펙트럼을 증명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간호사 마르타 역의 아나 데 아르마스는 도덕적으로 선한 인물을 연기하면서도 결코 밋밋하지 않은 캐릭터를 만들어냅니다. 거짓말을 하면 구토가 나는 설정이 단순한 코미디 장치로 그치지 않고, 이 인물의 진정성을 증명하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아나 데 아르마스는 이 작품으로 할리우드에서의 입지를 확실히 굳혔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 외에도 제이미 리 커티스, 토니 콜렛, 마이클 섀넌, 크리스토퍼 플러머까지 출연진 하나하나가 각자의 자리에서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살려냅니다. 가족 구성원 각자가 살해 동기를 가지고 있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숨기는 것이 있기 때문에 이 앙상블이 만들어내는 긴장감이 영화 전반에 고르게 퍼져 있습니다.
후더닛 장르의 매력
후더닛은 '누가 했는가(Who done it)'에서 비롯된 추리물의 하위 장르입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들이 대표적인 예로 용의자들을 한 공간에 몰아넣고 탐정이 단서를 추적하며 범인을 찾아내는 구조를 따릅니다. 이 장르는 수십 년간 수많은 작품에서 반복되면서 이미 공식이 너무 익숙해졌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나이브스 아웃은 그 익숙함을 정면으로 활용합니다. 라이언 존슨 감독은 장르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관객이 그 문법에 기대는 순간을 정확하게 포착해 이야기를 비틉니다. 장르를 모르는 관객에게는 신선한 추리물로, 장르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공식을 해체하는 메타적 재미로 다가옵니다. 두 겹의 만족감을 동시에 설계한 셈입니다. 저택이라는 밀폐된 공간, 개성 강한 용의자들, 수수께끼 같은 탐정, 그리고 뜻밖의 목격자라는 요소들이 고전적인 후더닛의 틀을 이루고 있지만, 영화가 실제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미국 사회의 계층과 이민자의 자리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오락과 메시지 사이에서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균형을 유지한다는 점이 이 영화가 단순한 장르물에 머물지 않는 이유입니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각본상 후보에 오른 것도 단순한 흥행작이 아니라 잘 쓰인 이야기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은 결과입니다. 장르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물론이고, 추리물과 다소 거리가 있는 관객에게도 진심으로 권하고 싶은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