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처음 본 건 올드보이를 먼저 보고 나서였습니다. 3부작의 첫 번째라는 말에 기대를 안고 봤는데 올드보이와는 완전히 다른 질감에 처음에는 당황했습니다. 화려한 반전도 없고 자극적인 스펙터클도 없는데 보는 내내 숨이 막혔습니다. 나쁜 사람이 하나도 없는 이야기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쉽게 권하기 어려운 영화이지만 박찬욱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반드시 봐야 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불편함이 이 영화가 말하려는 것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 개봉일: 2002년 | 장르: 범죄, 드라마 | 러닝타임: 120분 | 감독: 박찬욱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
박찬욱 감독의 복수 3부작은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로 이루어집니다. 세 작품이 직접적인 줄거리 연결은 없지만 복수라는 행위가 인간에게 무엇을 남기는지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탐구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연작으로 묶입니다. 복수는 나의 것은 그 시작점으로 3부작 중 가장 건조하고 냉혹한 작품입니다. 올드보이가 반전과 충격으로 유명하고 친절한 금자씨가 상대적으로 정제된 복수를 다룬다면 이 첫 번째 작품은 복수가 어떻게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는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줍니다. 박찬욱 감독은 이 영화에서 감정을 최대한 절제합니다. 카메라는 폭력 장면을 가감 없이 담으면서도 과잉 연출을 피하고 건조하게 사건을 관찰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이 냉정한 시선이 오히려 관객에게 더 큰 불쾌감과 무력감을 남깁니다. 개봉 당시에는 지나치게 어둡다는 이유로 흥행에 참패했지만 이 영화가 없었다면 올드보이의 방향도 달라졌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해외 영화제에서는 강렬한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특히 서구 관객들에게 한국 영화의 새로운 면을 알린 작품이기도 합니다. 복수 3부작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인 복수의 무의미함과 연쇄적 비극이 이 첫 작품에서 가장 날 것의 형태로 제시되며 3부작을 완주한 관객이라면 이 작품이 이후 두 편의 토대가 되었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습니다.
영화 속 계급과 비극
복수는 나의 것에서 가장 강렬하게 드러나는 것은 계급이 비극을 만드는 방식입니다. 류는 선천성 청각장애인으로 일용직 노동자입니다. 누나의 신장 이식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시도하지만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장기 밀매 브로커에게 자신의 신장과 전 재산을 빼앗기고 바로 그 직후 병원에서는 적합한 신장이 나왔다는 통보가 옵니다. 이 잔인한 아이러니가 류를 범죄로 밀어 넣는 출발점입니다. 반면 유괴 피해자가 되는 동진은 중소기업 사장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딸을 잃은 뒤에는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가는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옵니다. 이 영화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흐립니다. 류는 선의로 시작했고 동진은 당연히 복수를 택하지만 그 과정에서 어느 쪽도 구원받지 못합니다. 신하균과 배두나는 수화를 완벽하게 구사하기 위해 농아학교에서 한 달간 직접 배웠는데 두 사람의 수화 대화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조용하고 가장 슬픈 순간들을 만들어냅니다. 가난한 자의 선의와 부유한 자의 분노가 충돌했을 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이 이 영화가 계급에 대해 던지는 가장 냉혹한 시선입니다. 류가 나쁜 의도를 가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이 비극을 더 견디기 힘들게 만들며 그것이 이 영화가 가진 진짜 잔인함입니다.
복수는 나의 것 잔혹한 결말
이 영화의 결말은 박찬욱 필모그래피 전체를 통틀어 가장 비관적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복수의 연쇄는 끝을 모르고 이어집니다. 동진은 딸을 죽게 한 류를 강물 속에서 살해하고 류의 사망 이후에는 영미의 동료 무정부주의자들이 동진을 찾아와 그를 살해합니다. 어느 한 쪽의 복수가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다음 복수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구조는 복수라는 행위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피해자를 만들 뿐이라는 것을 형식 자체로 보여줍니다. 결말에서 살아남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가장 무거운 감각으로 남습니다. 박찬욱 감독은 이 영화에서 선악의 구도를 완전히 해체합니다. 나쁜 의도를 가진 인물은 거의 없습니다. 모두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행동했을 뿐인데 그 결과가 모두의 파멸로 이어집니다. 잔혹한 장면들이 연달아 나오지만 이 영화가 진짜 잔혹한 이유는 폭력의 묘사 때문이 아니라 그 폭력이 얼마나 허망하게 소비되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3부작의 첫 번째 작품인 만큼 이 결말은 이후 올드보이와 친절한 금자씨가 복수의 주제를 어떻게 변주할지를 예고하는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불편하고 무거운 엔딩이지만 그 무게가 이 영화를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이유이며 보고 나서 아무 말도 하기 어렵게 만드는 몇 안 되는 영화 중 하나입니다. 박찬욱이 말하고자 했던 것이 가장 날 것 그대로 드러나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