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위플래쉬를 처음 본 건 개봉 당시 별다른 기대 없이 들어간 극장에서였습니다. 재즈 드럼 영화라는 소개만 듣고 앉았다가 러닝타임 내내 등받이에 제대로 기대지도 못했습니다. 플레처가 의자를 집어던지는 순간부터 저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고 엔딩 연주가 끝나는 순간엔 손에 땀이 나 있었습니다. 음악 영화라기보다는 극한의 심리 스릴러에 가깝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보고 나서 한동안 플레처의 얼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무섭다기보다 그 눈빛 속에 담긴 무언가가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 개봉일: 2015년 | 장르: 드라마, 음악 | 러닝타임: 107분 | 감독: 데미언 셔젤
영화 위플래쉬 속 숨 막히는 명장면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장면들은 대부분 연주 씬에서 나옵니다. 그중에서도 앤드류가 첫 번째 정식 무대에 서던 장면은 단연 압도적입니다. 악보를 잃어버린 채 무대에 올라 오로지 기억과 본능으로 드럼을 치는 그 순간 관객은 그와 함께 숨을 참게 됩니다. 손에서 피가 나도 멈추지 않는 연습 장면 역시 보는 내내 불편하면서도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데미언 셔젤 감독은 클로즈업과 빠른 편집을 통해 연주 장면을 마치 격투처럼 만들어냈습니다. 드럼 스틱이 심벌즈를 치는 소리 하나하나가 폭발처럼 들리고 땀방울이 튀는 슬로모션 컷은 긴장감을 극도로 끌어올립니다. 마일스 텔러는 실제로 드럼을 배워 촬영에 임했고 일부 연주 장면은 직접 연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덕분에 화면 속 연주는 연기가 아닌 실제처럼 느껴지며 고통과 황홀감을 동시에 체험하게 만듭니다. 특히 마지막 카네기홀 무대의 연주는 단순한 클라이맥스가 아니라 앤드류라는 인물이 도달한 경지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 긴 연주가 끝났을 때 극장 안은 잠시 정적에 휩싸였습니다. 음악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이토록 숨막힐 수 있다는 것을 이 영화는 증명해냈습니다. 편집의 리듬이 음악의 리듬과 맞물리는 방식도 인상적입니다. 연주가 빨라질수록 컷의 호흡도 짧아지면서 관객의 심박수를 함께 끌어올리는 효과를 만들어냅니다. 이런 연출 방식 덕분에 드럼을 전혀 모르는 관객도 화면 앞에서 온전히 그 에너지에 압도됩니다.
두 남자의 대결
위플래쉬의 핵심은 결국 두 남자 사이의 관계입니다. 앤드류 니먼은 최고의 드러머가 되겠다는 집념 하나로 살아가는 청년이고 테런스 플레처는 천재를 발굴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방법도 서슴지 않는 교수입니다. 이 둘의 관계는 스승과 제자라기보다 서로를 끊임없이 시험하는 두 존재의 대결에 가깝습니다. 플레처는 앤드류를 무너뜨리기 위해 모욕하고 압박합니다. 단순한 가학이 아니라 그 안에서 진짜 재능이 살아남는지를 보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앤드류 역시 무너질 듯 흔들리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 집착이 때로는 안쓰럽고 때로는 섬뜩하게 느껴집니다. 두 사람의 긴장은 영화 내내 팽팽하게 유지되다 마지막 카네기홀 무대에서 폭발합니다. 플레처가 앤드류를 무너뜨리려는 순간 앤드류는 오히려 역전을 선택합니다. 그 마지막 연주는 복수인지 증명인지 화해인지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채로 끝납니다. J.K. 시먼스는 플레처를 단순한 악역이 아닌 복잡한 신념을 가진 인물로 그려냈고 그 공로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습니다. 마일스 텔러 역시 신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연기를 보여주며 앤드류의 집착과 성장을 설득력 있게 표현했습니다. 그 모호한 결말이야말로 이 영화가 오래 기억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영화를 완성한 OST
위플래쉬의 OST는 영화의 긴장감을 완성하는 또 하나의 주인공입니다. 음악 감독 저스틴 허위츠는 재즈를 기반으로 하되 스릴러적인 긴장감을 음악 안에 녹여냈습니다. 타이틀곡이기도 한 위플래쉬는 빠른 템포와 복잡한 리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영화 전반의 에너지를 상징하는 곡입니다. 드럼 솔로가 중심이 되는 구성 덕분에 음악 자체가 하나의 캐릭터처럼 느껴집니다. 영화 중반에 등장하는 캐러밴 연주 장면은 재편곡된 버전으로 강렬한 드럼 배틀 씬과 맞물려 극적 긴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립니다. OST 전반에 걸쳐 재즈 특유의 즉흥성과 긴장감이 공존하며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닌 서사의 일부로 기능합니다. 음악을 잘 모르는 관객이라도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이 주는 압박감은 충분히 체감할 수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무대에서 흘러나오는 연주는 화면과 음악이 완전히 일체가 되는 순간을 만들어냅니다. 저스틴 허위츠는 이후 라라랜드와 퍼스트맨 등에서도 음악 감독으로 활약하며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위플래쉬의 OST는 영화가 끝난 뒤에도 귓가에 남아 그 강렬했던 두 시간을 계속 소환합니다. 재즈에 익숙하지 않았던 관객들도 이 영화를 계기로 재즈 드럼의 매력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음악이 장르를 초월해 감정을 직접 건드릴 수 있다는 것을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가장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영화를 본 뒤 OST를 따로 찾아 듣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음악이 얼마나 강한 인상을 남겼는지 알 수 있습니다.